한때 세계 축구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 세리에 A는 2000년대 후반 잠시 주춤했으나, 최근 다시 유럽 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있다. 한 리그의 위상과 재정력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는 바로 선수 영입에 사용하는 '이적료'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이적 시장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가장 큰 이벤트이기도 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역사상 가장 높은 이적료를 기록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던 영입 TOP 10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명단에 특정 구단, 바로 유벤투스의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들은 그 값어치를 해냈는지, 그리고 그들의 이적이 세리에 A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파헤쳐 본다.
2001년, 유벤투스는 파르마의 젊은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을 영입하기 위해 5,288만 유로를 지불했다. 당시 골키퍼에게 이 정도의 금액을 투자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이 기록은 무려 17년 동안이나 골키퍼 역대 최고 이적료로 남아있었다. 유벤투스는 미래의 10년을 책임질 수문장을 영입하기 위해 시대를 앞서가는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이 이적은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부폰은 이후 17년간 유벤투스의 골문을 지키며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팀이 승부조작 스캔들로 세리에 B로 강등되었을 때도 팀에 남아 의리를 지켰다. 그는 단순한 선수를 넘어 유벤투스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고, 5,288만 유로라는 이적료를 오히려 저렴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2000년, 세리에 A는 '7공주 시대'라 불리며 세계 최고의 리그로 군림했다. 당시 SS 라치오는 파르마에서 맹활약하던 아르헨티나의 특급 공격수 에르난 크레스포를 5,681만 유로에 영입하며 세계 최고 이적료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세르지오 크라뇨티 구단주의 아낌없는 투자 아래 리그 2연패를 노리던 라치오의 야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영입이었다.
크레스포는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그는 이적 첫해인 2000/01 시즌 26골을 터뜨리며 리그 득점왕(카포칸노니에레)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라치오는 리그 우승에 실패했고, 이후 구단이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면서 크레스포는 단 두 시즌 만에 인터 밀란으로 이적해야만 했다. 그의 이적은 라치오 황금기의 화려한 시작과 비극적인 끝을 동시에 상징한다.
아탈란타에서 잔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의 지휘 아래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성장한 퇸 코프메이너스. 그는 뛰어난 전술 이해도, 강력한 왼발 킥, 그리고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득점력을 갖추며 세리에 A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여러 빅클럽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
수년간 중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유벤투스는 2024년 여름, 마침내 5,840만 유로라는 거액을 투자해 코프메이너스 영입을 확정했다. 이는 유벤투스가 중원 세대교체와 팀 재건의 핵심으로 그를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가오는 24/25 시즌, 그가 과연 유벤투스의 부활을 이끌 구심점이 될 수 있을지 모든 팬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던 로멜루 루카쿠는 2019년, 자신을 강력하게 원했던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부름을 받고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인터 밀란은 그의 영입을 위해 7,400만 유로를 투자하며 구단의 새로운 프로젝트 핵심으로 삼았다. 루카쿠는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는 전술 아래에서 부활을 노렸다.
그의 부활은 성공적이었다. 루카쿠는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와 환상의 투톱을 이루며 두 시즌간 95경기 64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특히 2020/21 시즌에는 인터 밀란의 11년 만의 스쿠데토 탈환을 이끌며 유벤투스의 독주를 끝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첼시로 이적했다가 다시 인터 밀란으로 복귀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첫 이적 당시 그가 보여준 임팩트는 실로 대단했다.
프랑스 리그앙 LOSC 릴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보여준 나이지리아 출신 공격수 빅터 오시멘. 2020년, 나폴리는 구단 역사상 최고액인 7,890만 유로를 지불하며 그를 영입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초반에는 부상으로 인해 고전했지만, 점차 리그에 적응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시멘의 잠재력은 2022/23 시즌에 마침내 만개했다. 그는 리그에서만 26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고, 나폴리를 33년 만의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끌며 디에고 마라도나의 뒤를 잇는 나폴리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의 이적은 구단의 과감한 투자가 어떻게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가 되었다.
아르투르 멜루의 이적은 축구 실력 외적인 요인으로 더 큰 화제가 되었다. 2020년, 유벤투스는 미랄렘 피아니치를 바르셀로나로 보내고 아르투르를 영입하는 사실상의 스왑딜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선수의 이적료가 회계 장부상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규정을 피하기 위한 '플루스발렌차(Plusvalenza, 자본 이득)' 논란의 중심에 섰다.
논란을 뒤로하고 유벤투스에 합류한 아르투르의 활약은 처참했다. 잦은 부상과 전술 적응 실패로 인해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고, 팬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혔다. 리버풀, 피오렌티나 등으로 임대를 전전하며 결국 유벤투스에서 성공하지 못한 그는 세리에 A 역사상 최악의 영입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피오렌티나 시절, 두산 블라호비치는 '제2의 바티스투타'라 불리며 세리에 A를 폭격하는 젊은 공격수였다. 그는 2021년 한 해에만 33골을 기록하며 호날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유벤투스는 2022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8,350만 유로를 과감히 투자하며 아스날 등과의 영입 경쟁에서 승리했다.
유벤투스 합류 이후 블라호비치는 강력한 피지컬과 결정력을 바탕으로 팀의 주포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팀 전술의 변화와 기복 있는 경기력으로 인해 피오렌티나 시절의 파괴력을 꾸준히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여전히 높은 잠재력을 지닌 그가 과연 이적료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며 유벤투스의 부활을 이끌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8/19 시즌, 아약스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4강에 진출했다. 그 돌풍의 중심에는 19세의 어린 주장, 마테이스 데 리흐트가 있었다. 바르셀로나, PSG 등 유럽 모든 빅클럽의 러브콜을 받은 그의 최종 선택은 유벤투스였다. 유벤투스는 8,550만 유로라는 거액을 투자하며 그를 전설적인 수비수 키엘리니와 보누치의 후계자로 낙점했다.
데 리흐트는 세리에 A 특유의 수비 전술에 적응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이내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팀의 주전 수비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세 시즌 동안 유벤투스의 후방을 든든히 지켰지만, 팀이 전체적으로 부진에 빠지면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22년 독일의 거함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2015/16 시즌, 곤살로 이과인은 나폴리 소속으로 36골을 터뜨리며 66년 만에 세리에 A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나폴리의 영웅으로 떠오른 그를 다음 시즌 라이벌 유벤투스가 바이아웃 금액인 9,000만 유로를 지불하고 영입했다. 이 이적은 나폴리 팬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주었으며, '코리안노(Core 'ngrato, 배은망덕한 사람)'라는 비난을 받으며 세리에 A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적 중 하나가 되었다.
유벤투스로 이적한 이과인은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호날두가 영입된 이후 팀 내 입지가 급격히 좁아졌고, AC밀란과 첼시로 임대를 떠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9,000만 유로라는 이적료에 걸맞은 꾸준함을 보여주지 못한 채 미국 MLS로 떠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18년 여름, 축구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리오넬 메시와 함께 시대를 양분하던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유벤투스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당시 33세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벤투스는 그에게 무려 1억 1,700만 유로라는 세리에 A 역대 최고 이적료를 투자했다. 이는 유벤투스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오랜 숙원을 풀기 위해 던진 역대급 승부수였다.
호날두는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세 시즌 동안 134경기에서 101골을 터뜨리며 이름값을 증명했다. 그는 두 번의 리그 우승과 한 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팀에 안겼지만, 정작 영입의 가장 큰 목표였던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는 들어 올리지 못했다. 결국 그의 이적은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팀 성적 면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남긴 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복귀로 마무리되었다.